[관측기] 별로 가득찬 여행 - 산청 별아띠&횡성 천문인마을

by 조강욱 관측부장 posted Aug 2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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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강욱입니다!

 

관심법 게시판까지 만들어 주셨는데 제가 글쓰기가 너무 부진해서.. ㅎ

 

정해진 순서인 구상성단 대신 지난 여름휴가에 별 본 얘기를 살짝 해보겠습니다

 

관심법 다음 진도인 구상성단도 coming soon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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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의 7월은 유난히도 더웠다

 

아니 원래 항상 그리 더운데 여름이 끝남과 동시에 얼마나 더웠는지를 잊어버리는지도 모른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나는 일주일간 회사와 가정에서 휴가를 얻어서

 

별로 가득찬 여행을 떠났다

 

아니, 2012년에도 여름휴가 대신 가을에 8박 9일로 호주에 다녀왔으니

 

3년 연속이라 할 수도 있겠지

 

울산 토박이인 처가집은 1남 3녀이다. 그 시절에 흔히 있던 스토리로

 

아들 낳을 때까지 자녀를 낳았던 것이다

 

그 당시는 원하지 않았던(?) 야속한 딸들이지만

 

30년 뒤 현세에는 딸 많은 집이 최고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겠지.

 

여튼, 세 딸은 모두 울산을 떠나 서울에 산다.

 

그녀들은 올해도 휴가를 맞추어 울산에서 엄마와 함께 망중한을 즐길 예정.

 

허나 사위들이 같이 가면 엄마가 쉴 수가 없기에..

 

결국, 그녀들의 남편도 덩달아 혼자만의 자유시간을 획득하게 되었다.

 

일주일간의 자유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완벽한 휴가가 될까?

 

별로 채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다만 어떤 별을 채우느냐가 문제.

 

마침 천문학회 경남지부에서 휴가가 시작되는 토요일에 안시관측 강의가 있어서

 

산청 별아띠에 갔다가 천문인마을로 가서 나머지 날들을 보낼 수 있도록

 

천문인마을 화백님과 대장님께도 연락을 해 놓았다

 

 

 

1일차 (7/26,토) - 산청 별아띠

 

산청. 그 이름의 거리감만큼 땅의 거리도 멀다.

 

휴가철의 정체는 보너스..

 

하지만 남쪽으로 내려갈 수록 장마철의 깜짝 파란 하늘이 깊어지는 것에 에너지를 얻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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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8시에 망원경을 싣고 집에서 출발하여,

 

오후 2시 목표시간에 정확히 맞추어 내비녀가 가르쳐 준 경남 산청의 간디고등학교에 도착했는데

 

뭔가 이상해서 연락해보니 강의 장소는 간디중학교라고..

 

설상가상 내비녀는 산청군에 간디고등학교 간디어린이학교 간디학교만 가르쳐주고

 

디중학교는 검색되지 않는다

 

주소로 찾으려 하니 목적지인 갈전리는 산청군 내에서도 신안군 갈전리와 생초면 갈전리가 있다

 

나는 운전을 참 싫어한다

 

망원경을 대충 다루듯이 차를 가꾸는 데도 관심없고 하늘 길은 찾지만 땅의 길은 잘 모른다

 

목적지가 정확히 표시되는 티맵은 GPS 수신불능 상태.

 

아... 그냥 집에 갈까..

 

다시 한참을 돌아 돌아서 산청군 신안면 갈전리의 별아띠천문대 인근 간디중학교 도착.

 

서울에서 비 맞으면서 왔는데 산청은 파란 하늘이 눈부시게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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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관측 관련 강연을 30여회 하면서 지역별 특징을 파악했는데,

 

내가 본 경상도 분들의 특징은 잘 웃지 않는 것. 원래 빵빵 터져야 하는 부분도 조용히 넘어간다

 

작년에는 많이 놀랐지만 올해는 나도 적응을..

 

4시간이 넘게 떠들고 나니 벌써 박명이 되었다

 

하늘에는.. 하늘엔 은하수가 보인다!

 

장마 중에 취소했다가 예보가 좋아서 겨우 다시 부활한 연수에서 만난 대박 하늘.

 

특히 성운들이 너무나 잘 보인다

 

M17은 2011년 인제에서 보던 것과 같이 활활 불타고 있다

 

이 정도면 스케치를 할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베일성운의 디테일도 흔히 볼 수 없는 모습.

 

그러나 오늘은 사람이 너무 많다

 

자정까지 천문학회 경남지부 연수생 분들 관측 지도하다가,

 

야식시간 지나서 조금 조용해지면 오늘은 성운 한 번 봐야지.. 하고서

 

라면 한 그릇 먹고 잠시 누웠다가 눈을 뜨니 아침이다.

 

아무리 6시간 운전이 피곤했어도, 4시간 떠들기로 에너지를 소비했어도

 

장마철의 극적인 하늘 아래서 어떻게든 버텼어야 하는 것인데..

 

밤을 샌 박동현님(아침해)의 얘기를 들어보니

 

내가 방에 드러누운 12시부터 구름이 살짝 끼고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관측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2일차 (7/27,일) - 산청 별아띠

 

아침에 야간비행 게시판을 보니 김재곤님이 어디 갈까 고민하고 계신다

 

산청은 맑다고 염장을 질러야 하는데 아쉽게도 스마트폰으로는

 

야간비행에 사진을 올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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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현님은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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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업무'로 별보기를 맡았다가 빠져들게 되셨다는.

 

애들이 별 보고 싶다 해서 망원경 샀다가 마지막엔 아빠만 남는 경우와 비슷한 걸까?

 

박동현님은 오프라인에선 처음 뵈었지만, 전혀 낯설지가 않다.

 

그의 수많은 관측기에서 이미 만났었기에.

 

그리고 내가 한참 했던 '삼공이(i30)에 테트리스 하기'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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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휴가 동안 진삽이한테 얼마나 별빛을 보여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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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님의 18인치. 고색창연 하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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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아띠 천문대를 방문한 연수생들이 모두 귀가하고서 정오쯤부터

 

별아띠의 SolarMax 60mm로 종일 태양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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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덥다...

 

태양은 쉽게 보고 쉽게 그릴 수 있지만

 

태양을 관측하려면 타는 듯한 땡볕과 싸워야 한다

 

모든 것은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태양이 자오선을 넘으면,

 

별아띠에서는 그늘에서 관측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슬라이딩 돔만 잘 조작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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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아띠를 방문한 어느 아이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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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은 이번주에 내 소원을 들어줄 것인가..

 

원래 오늘은 천문인마을로 출발해야 하는데, 김도현님이 간만에 왔는데 하루 더 있으라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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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간만에 뵙는 도현형님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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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 예보도 남부지방이 맑을 예정이라 하루 더 있기로.

 

지금 장마철이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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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묵을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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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지만 미닫이문에 블라인드만 내리면 너무나 시원하다

 

태양 한 컷 그리고 낮잠 한 시간,

 

태양 한 컷 그리고 책 몇 줄.

 

오후 5시쯤 결국 연작 두 가지를 완성했다.

 

태양 관측의 매력은 시간 단위로 모습이 바뀌는데다 토성이나 목성과 다르게

 

한 번 본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아무도 못 봤을지 모르는 (그럴리는 없겠지만) 홍염 한 줄기에 이름을 달아주고 기억해본다

 

[ 뜨거운 다이빙/미어캣, 산청 별아띠천문대, 조강욱 (2014) ]

 

산청_홍염.jpg   

 

도현형님이 대전에 있는 민정언니한테 전화를 한다

 

저녁 먹으러 오라고..

 

저녁 먹으라고 부른 사람이나 대전에서 달려온 사람이나 둘 다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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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시골에서 드립커피도 마셔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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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언니와 박명이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데,

 

하늘을 길게 가로지르는 얇은 구름들이 석양빛을 받아서 점점 붉게 물든다

 

아! 이건 노을인가 오로라인가..

 

사진으로 찍어도 그 오묘한 색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림으로 그려볼까?

 

[별아띠의 노을 or 오로라, 갤럭시노트2에 S펜과 손가락]

 

700p_별아띠의 노을 or 오로라.jpg

 

 

멋진 노을이 지나갈 때는 좋았는데, 그 황홀한 구름이 점점 더 세력을 넓혀가며

 

하늘을 장악하기 시작한다

 

이 날은 별아띠에 일반인 가족들이 20분 정도 오셨는데,

 

10시까지 도현형님을 도와서 관측봉사를 마침과 동시에

 

하늘은 구름 속으로 완전히 가려져 버렸다..

 

 

다시 하늘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망원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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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아띠 천문대는 신발을 벗고 슬라이딩 돔에 올라가는 구조이다

 

바닥에는 열선이 깔려 있어서 비치된 이불을 덮고 누우면

 

그 자체로 하늘 감상을 할 수 있는 멋진 관측환경.

 

위성 사진은 나쁘지 않아서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리며 맥주 한 잔 하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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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현님 전화가 왔다. 별아띠에 오시겠다는.. 첫째아이도 같이 데리고 오신다고..

 

별아띠 대장님이 하늘 안 좋다고 오지 말라 했는데도 오신단다. 김해는 하늘이 좋았었을까?

 

얼마 뒤 박동현님이 큰아이를 데리고 오셨는데..

 

크다 해봐야 아기 바구니에 데리고 다니는 간난쟁이.

 

애기까지 데리고 별을 보러 온 박동현님의 뜨거운 열정이 놀랍기만 하다.

 

하지만 하늘은 끝까지 열리지 않고.. 우리는 별 대신 보리차와 함께 밤을 지새야만 했다

 

그 와중에 낮부터 보현산에 오라고 계속 연락하시던 부산의 이현호님은 별빛 샤워중.

 

같은 경상도인데도 날씨가 이렇게 다를수가..

 

별보기는 항상 선택의 연속이다

 

갈지 말지, 어디로 갈지, 무얼 볼지, 어떻게 찾을지, 누구와 함께 할지..

 

예전에는 관측에서 꽝이 나면,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하고 한탄을 많이 했는데

 

어짜피 관측 성공률을 더 높일 수 없다면..

 

'꽝'을 뽑으면 다음번엔 '당첨'을 뽑을 확률이 더 높아진다고 편하게 생각하련다.

 

 

 

 

3일차 (7/28,월) - 천문연구원 / 천문인마을

 

 

밤새 대기만 한 진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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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님이 만들어 주신 사경 조절나사. 광축 맞추는 시간이 10~15분에서 1분 이내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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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희&한솔형님 감사합니다!

 

 

추석 선물세트 전단지에 '장인의 손길을 거쳐'라는 멘트와 함께 나올 것 같은 포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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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골에서 서양식 아침을 먹고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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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천문인마을에 가기로 한 날. 휴가 끝까지 거기서 숙식하며 별을 볼 예정이다

 

보현산에서 2박3일 노숙을 하고 돌아오는 이현호님과 조우하여 브런치를 하고 갈까 하다가

 

너무 멀리 돌아가야 하여 다음 기회로.. 별 보는 사람을 낮에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가는 길에 고속도로에서 대전을 지나야 해서, 주고 갈 것도 있고 하여 천문연구원에 잠시 들렀다

 

천문연구원 홍보팀의 새로운 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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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수많은 것들 꼭 이루기를..

 

 

 

경남에서 강원으로, 북쪽으로 동쪽으로 올라갈수록 구름의 두께는 점점 더 짙어져만 간다

 

혹시 오늘 무언가 할 수 있을까 하여 위성사진을 보니

 

휴전선을 중심으로 남북의 경계가 뚜렷하다.

 

나만 위성사진을 보고 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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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비에 안 찍혀서 기수를 돌리지는 못하고 그냥 천문인마을로..

 

 

천문인마을엔 올해 들어 처음 방문했다. 날씨만 좋으면 달려가던 때도 있었는데..

 

방문이 뜸해진 이유는 '길' 때문이다.

 

춘천고속도로 등 강원도 각지로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더 가까운 곳에 더 좋은 관측지가 생기기도 하였고,

 

천문인마을 진입로가 좋아지면서 천문인마을 코 앞까지 집과 불빛이 침범했기 때문이다.

 

별빛보호지구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초중고 방학 기간임에도 천문인마을이 한적하다.

 

세월호 사건 이후 학교에서 학생들을 데리고 다니려면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여,

 

전국의 과학관 등 학생 관련 시설이 모두 대란을 겪고 있다는 말씀.

 

 

며칠간 묵을 내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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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늘은 여전히 빈 틈이 없다

 

혹시 모르니 여유있게 망경을 세팅하고

 

(자폐정이 망원경 운반을 도와줬다. 아마도 처음이 아닐까?

 아님 천문인마을에 우렁각시가 사는지도..)

 

화백님과 간만에 술잔을 기울이다 가망 없는 하늘을 기다리며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주차해둔 차에 빗물이 고여 있고,

 

옥상에 올라가보니 망원경이 방 안으로 들여져 있다

 

어? 진짜 우렁각시가 있나..

 

자폐정의 증언에 따르면 새벽에 비가 많이 왔는데 Nightwid 깨우러 갈 시간도 없었다는.

 

그나저나 별 소득 없이 벌써 3일 밤이 지났다.

 

 

 

 

4일차 (7/29,화) - 천문인마을 

 

 

서울에서는 에어컨 없는 곳에는 근처도 가지 않았는데

 

지리산 산골이나 치악산 산골이나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지만 그들이 전혀 필요치 않다

 

방에서 뒹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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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만 찾아가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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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빙수와 카페인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자폐정과 안흥 읍내로 나섰다

 

근방 30km 이내 유일한 커피집인 안흥의 커피&빵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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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방 30km 내의 유일한 커피집은 이미 지난 달에 문을 닫았다.

 

그렇다고 50여분 차 타고 횡성까지 나갈 수도 없고..

 

슈퍼에서 파는 2천원짜리 롯데 팥빙수로 아쉬움을 달랬다

 

 

너무나 간만에 목격한 선물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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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집 뿐이 아니라 문을 닫은 밥집도 많다. 내수 침체의 여파가 여기까지?

 

한참을 떠돌다 겨우 점심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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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인마을에 1999년 처음 발을 들인지 15년이 되었지만,

 

자폐정이 망원경을 들어다 준 것도 밖에서 같이 밥을 먹은 것도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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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늘 변화하나보다

 

 

 

아점을 해결하고 돌아와서 다시 혼자 놀기.

 

옥상에 마냥 자리 펴고 앉아서 잠복근무 중에 회색빛 사이로 태양도 한 장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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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테리아 앞 벤치에서 생전 안 보던 책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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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하늘은 오늘도 회색이다. 하늘색은 원래부터 회색이 맞는 거 아닌가 하고 의심이 든다.

 

차라리 비나 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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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진짜 빗방울이 떨어진다.

 

몇 방울 떨어지나 했는데 삽시간에 요란하게 비가 들이치더니

 

땅 위의 열기를 다 식히지도 못하고 다시 그쳐 버렸으나..

 

구름도 같이 가져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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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얼마만의 맑은 하늘인가!

 

요행히 맞은 푸른 빛이 저녁까지 이어질까 마음이 두근두근하다..

 

계속 오락가락하던 구름은 일몰 후에도 계속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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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리면서 구름도 점차 사라지고 별이 보인다!

 

오늘 예보는 밤새 구름 많음이었는데 이게 무슨 기적일까.

 

(아주 맑은 것은 아니고 엷은 구름이 덮여있었다)

 

근데 뭘 보지? 별이 보일거란 기대가 별로 없어서 관측 준비도 하지 않있다

 

그래 인제에서 그리다 만 10번이 있었지.

 

그 멀리까지 가서 날씨 후지다고 밤새 방황하다가 새벽 박명 몇십분 전에 그리기 시작한 M10.

 

M10.jpg

 

M10은 구상 중에서도 참 특이하게 생긴 아이다.

 

양쪽으로 날개처럼 뻗은, 그리고 꼬리로 길게 이어져 있는 스타체인과 잔별들이

 

꼭 가오리 한 마리를 생각나게 한다.

 

가오리.jpg

 

 

박명이 지나고 한 시간쯤 관측을 하고 있으니 동남쪽 산등성이에서 거대한 안개가 몰려온다

 

안개가 덮치기 전에 끝낸다고 정신없이 10번을 마무리하고 있으니,

 

별이 초롱초롱하던 하늘은 순식간에 이미 안개속.

 

기다리다보면 걷히겠지.. 구름 오기 전에 빨리 봐야 하는데....

 

자욱한 산안개는 끝없이 흘러오다 자정 즈음 걷혔으나 걷히자마자 구름이 몰려온다.

 

기다릴 것도 없이 바로 모드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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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선택이었다.

 

 

 

 

5일차 (7/30,수) - 천문인마을

 

 

밥 먹는 것에 신경 쓰는 것을 최소화하고 별 보는 일에 집중하려고

 

매 끼니는 인스턴트 식품으로 때웠다.

 

아침엔 빵, 점심엔 컵라면, 저녁엔 즉석밥 등등..

 

며칠간 이런 것만 먹으니 무언가 다른게 먹고 싶어진다.

 

햄버거랑 팥빙수를 먹으려면 한 시간 거리인 원주나 횡성까지 나가야 할 거고..

 

천문인마을 반경 20분 거리에 있는 유일한 맛집. 곤드레밥 집에 가보자!

 

맛있는 것 먹을 생각에 노래를 흥얼거리며 장미산장엘 갔는데, 곤드레밥은 1인분은 안 판단다.

 

결국, 그 옆집에서 영혼없는 두부찌개로 배만 채우고 복귀.

 

오늘도 예보는 구름 많음이다. 아니 오늘 뿐이 아니라 이번주 내내 하염없이 구름 많음 예보인데,

 

산이라 날씨가 자주 바뀌는 것인지 구름 사이로 간간히 파란 하늘과 태양이 보인다

 

그래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보자.

 

옥상에 자리를 잡고 반쯤 누워서 키티 우산으로 상체만 겨우 가리고 태양을 기다린다.

 

음악 들으며 졸면서 시간 보내다 보면 어느 순간, 발가락이 갑자기 달궈지는 순간이 있다

 

관측 가능시간 10초 전을 알리는 알람시계 같은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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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 벌떡 일어나서 파인더도 없는 망원경으로 정신없이 태양을 맞추고

 

그림 한 장 그리다 보면 완성하기도 전에 다시 구름 속으로.

 

몇 번의 잠복 근무로 겨우 홍염 하나 완성하고 (10분이면 충분한 것을 한 시간 동안..)

 

바오밥1.JPG

 

 

구름이 끼어서 개점휴업 상태가 되어 안흥의 유일한 약국에서 사 온 정제수로

 

몇 년 만에 미러 청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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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미러 청소에는 큰 관심이 없으나,

 

그래도 예의상 정제수로 먼지만 겨우 씻어내는 정도로 해 본다.

 

오후가 깊어갈수록 하늘의 푸른색도 회색을 밀어내고 조금씩 더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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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에서 재미를 본 시간별 홍염 연작도 완성해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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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편에도 작은 홍염이 보이길래 그것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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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의 순간, 무지개빛 빛줄기가 산등성이에 찬란히 쏟아진다

 

(18시 19분 5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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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시 20분 9초 → 18초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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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시 21분 30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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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푸른색이 감돌던 하늘은 일몰 이후, 기적같은 맑은 하늘로 급속히 변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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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사진을 보니 구름떼 중의 작은 구멍에 천문인마을이 들어와 있고,

 

자정 전에는 다시 덮칠 전망이다

 

비올까봐 걷어 놓았던 망원경을 서둘러 세팅하니

 

서쪽 산등성이 바로 위로 아직 파란 하늘에 초승달이 보인다.

 

망원경으로 잡아보니 40mm 저배율에 파란색 하늘을 배경으로

 

산 능선의 나무에 살짝 가려지며 빛나는 하얀 달이 너무나 예쁘다..

 

 

[ 아이피스 월몰, 갤럭시노트2에 S펜과 손가락 ]

 

700p_아이피스 월몰.jpg

 

 

내가 박명 전에 망원경을 세팅해 놓고 어둠을 기다리는 일이 1년에 몇 번이나 될까?

 

호사를 증명하고자 틈틈이 망경 사이로 어둠이 내리는 모습을 담아보았다.

 

(오후 7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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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8시 정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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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8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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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8시 37분, 분명 눈으로는 보였으나 F 3.5 1/4초로는 아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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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나 될까?

 

'그 시간'이 얼마나 될 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구름이 몰려오기 전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아직 박명이 되지 않아 토성을 향해본다

 

아아 아름다운 토성.. 어떻게 이렇게 생길 수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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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Safari 캡쳐화면) 

 

당일 프로그램으로 놀러 온 일반인 가족들과 돌려가며 관측한 토성은 날카로움 그 자체.

 

카시니는 당연히 쉽게 보이고, 그 바깥쪽에 엔케가 보이는 것 같은데

 

조금씩 시상이 흔들려서 진짜 보이는 건지 착시가 보이는 건지 알기 어렵다

 

최고의 눈을 가진 자폐정도 마찬가지 소견. 나는 내 생애 두 번째 엔케를 본 것으로 생각하련다

 

토성 주변의 점들은 무얼까? 이름을 한 번 불러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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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 고리 아래 하나로 보였던 점이 SkySafari로 보니 위성 두 개다

 

Dione와 Tethys. 위치를 확인하고 다시 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 두 개로 쉽게 분리.

 

아는 만큼 보인다는 안시관측계의 1번 진리는 행성이라고 예외가 되진 않는다

 

멀리 Enceladus까지도 잘 보이는데 고리에 바짝 붙어 있을 13.6등급의 Mimas는 보이지 않는다.

 

더 고배율이 필요한가보다.

 

박명이 되고, 뱀주인자리로 기수를 돌린다.

 

사실 뱀주인자리는 별자리도 넓고 대상도 많은데 나는 거의 눈길을 준 적이 없다

 

박상구님도, 박진우님도, 그리고 여러 별쟁이들이 비슷한 얘기를.

 

 

뱀주인이 매력이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다음 중 맞는 것을 고르시오 (    )

 

1. 비슷비슷하게 생긴 구상성단들만 모여 있어서

2. 호핑이 은근히 어려워서

3. 위로는 헤라클레스에, 아래는 전갈의 화려한 대상들에 시선을 빼앗겨서

4. 그냥 별자리 이름 자체가 비호감

 

메시에 스케치 완주가 이제 몇 개 남았을까? 한 절반쯤 한 것 같은데..

 

역시나 뱀주인은 미루고 미루다가 올 여름에야 시작해 본다

 

난 항상 종이 한 장에 대상 하나씩만을 그려왔는데,

 

뱀주인과 전갈의 구상들은 한 장에 몇 개씩 그려서 각각의 특징을 비교해 보려고 계획을 세웠다.

 

진짜로 모든 구상성단은 제각각 unique한 특징이 있는지 알고 싶어서.

 

관측을 하고 보니, 쌍둥이처럼 붙어 있는 10번과 12번은 그 크기와 밝기만 비슷할 뿐

 

특징은 전혀 다른 애들이다 (당연한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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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리 모양의 10번보다는 12번이 전형적인 구상성단의 모습과 닮아 있다.

 

겉도 속도 완전히 다른 이란성 쌍둥이라고 할까.

 

 

언제 몰려올지 모르는, 그러나 분명히 다가올 구름의 예정된 습격에 마음만 급하여

 

둘러 14번으로 이동하여 아이피스로 잡아보니

 

별도 없는 휑한 하늘에 희미한 동그라미 하나가 을씨년스럽게 떠 있다

 

혹시 구름이 벌써? 하늘을 쳐다봐도 아직 하늘은 정상인데

 

14번은 기대했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다

 

마치 벗고개에서 혼자 밤을 보낼 때의 으시시함과  비슷하다고 할까?

 

M14.jpg

 

뭐 별로 그릴 것도 없는 14번을 관측하고 있으니 아이피스 안에 보이는 것이 점점 더 휑해진다.

 

밤 10시쯤, 1시간 반 동안의 관측 이후 예정되었던 구름의 진격이 시작되었다

 

천문인마을 옥상에서 구름이 흘러가기를 기다리다 지쳐서

 

카페테리아에서 화백님과 술 한잔 하고 있는데,

 

자정 즈음 천문인마을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비온다!

 

그대로 황급히 옥상에 뛰어 올라가니 자폐정도 방에서 급하게 나오는 중

 

망경 분해할 새도 없이 그대로 번쩍 들어서 방으로.

 

은하수 보였다가 소나기 내렸다가.. 그럼 다시 은하수가 나올 수도 있겠지?

 

화백님과 술 한 잔에 하늘 한 번, 술 한 잔에 하늘 한 번.... 하다보니 새벽 2시쯤,

 

다시 은하수가 나타났다.

 

다시 부랴부랴 망경 세팅하고 지고 있는 뱀주인을 잡고 있는데,

 

20분간 찬란히 빛나던 하늘은 다시 구름 속으로 숨어버렸다

 

오겠지. 또 오겠지.... 망원경을 옆에 두고 접의식 의자에 기대 앉아

 

블루투스 스피커에 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또 마냥 기다린다

 

 

어둠이 짙은 저녁 하늘

별빛 내 창에 부숴지고

외로운 밤을 홀로 지샌 내 모습

하얀 별 나를 비춰주네

 

불빛 하나 둘 꺼져갈때

조용히 들리는 소리

가만히 나에게서 멀어져가면

눈물 그 위로 멀어지네

 

< 김광석, 혼자 남은 밤 >

 

 

하지만.. 20분간 깜짝 선물을 선사한 하늘은 이젠 더 이상 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서, 뭐라도 해 보려고

 

박명 직전에 구름 사이로 별 몇 개 보이는 남쪽 하늘을 스마트폰으로 그려 보았다.

 

혼자남은밤_curve.jpg

 

 

 

 

 

6일차 (7/31,목) - 천문인마을

 

 

혼자만의 휴가도 이제 이틀 남았다

 

그동안 기어코 요기는 겨우 했지만 한 번도 마음 놓고 관측을 한 적이 없다

 

내일보다는 오늘이 나을 것 같은데....

 

휴가 첫날 깨알같이 적어 놓은 방학숙제(?)도 아직 반도 못했다.

 

휴가에는 아무 것도 안 하고 누워 있는 것이 정답일 수도 있겠지만,

 

내 휴가는 '중요하지만 긴급하지 않았던' 일들을 해결하는 데에 온통 보내고 있다

 

(대부분 별 관련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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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격상 '아무 것도 안 하고 누워 있는' 것은 평생 경험하지 못할 기행인지도 모르겠다.

 

방학숙제 중에서 가장 긴급한 일들 처리하고 있으니

 

오늘 오기로 한 친구가 도착했다 (김영대, 퀘이사 소속)

 

작년 휴가때도 천문인마을에서 일주일간 알바 & 관측을 함께 했는데..

 

어쩌다 보니 휴가때만 만나는(?) 친구가 되었다.

 

같이 안흥 읍내로 나가서 먹을 것들을 사 오고 (그래봤자 인스턴트 식품들과 술만 잔뜩)

 

천문인마을 지하 카페테리아에서 슈퍼에서 사 온 미니 팥빙수를 먹고 있는데,

 

(신상 우유빙수의 신세계를 맛보고 있는 자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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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하늘에서 계속 천둥 소리가 들린다.

 

며칠간의 경험상, 소나기라도 내려야 구름이 좀 엷어지고 잠깐이라도 별을 볼 수 있을텐데..

 

며칠 기습적인 비를 맞아서 오늘은 아예 망원경도 미리 방에다 들여다 놨다.

 

하늘에는 곧 비가 올 듯 먹장 구름이 가득하다가 변비환자인양

 

비 한 방울 뿌리지 않고 동쪽으로 흘러가 버린다.

 

옆 동네에 이미 다 뿌리고 온 건가..

 

아쉬워 하고 있는 사이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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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 올 거면 시원하게 내려야지 이 정도로 구름이 걷힐 리 만무하다

 

술이라도 넉넉하게 사 온 것을 위안하고 있으려니 빗방울이 점점 거세지더니

 

딱 30분만 와 줬으면 하던 비는 3시간을 넘겨 요란하게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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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설마 밤새도록 내리는 건 아니겠지.. 그친다 해도 이 습기를 어떡하나.

 

저녁 6시 일몰 직전, 드디어 비가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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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하늘에는 희미하게 무지개도 출연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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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예견되었던 엄청난 습기는 천문인마을을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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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에 출정 명령을 기다리는 진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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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던 두꺼운 안개는 미풍을 타고 서서히 걷히기 시작하여

 

저녁 8시가 넘은 시각,

 

기적의 맑은 하늘과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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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 사진을 봐도 오늘 밤 더 올 구름은 없어 보인다

 

고민할 겨를도 없이 뱀주인자리로 다시 향한다

 

오늘은 어제보다 날이 좋아서, 어제 완성했다 생각한 애들도 새로운 구조들이 보인다

 

빠른 시간에 12번, 14번 스케치를 다시 손보고 9번까지 뱀주인자리 구상 연작 한장 완성!

 

뱀주인 연작.jpg

 

원래 마지막 한 자리는 107번을 넣을 계획이었는데,

 

생각보다 시직경이 너무 작아서 그림의 밸런스를 위해 그보다 큰 9번으로.

 

107번은 다음 기회에 19번, 62번, 80번이랑 같이 한 장에 묶어 주련다

 

다음은 뱀주인만큼 어색한 사이인 뱀자리의 M5번.

 

뱀자리의 5번은 구상계의 최고 모범생이다

 

완벽한 구형, 어지럽게 수많은 별들이 찍혀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방사형으로 퍼져 나가며

 

정교하게 밀도가 조금씩 감소하는 한 점 흐트러짐 없는 구상성단 메시에 5번.

 

몇 년 전에 한솔형님이 '별이 생각나는 음악'으로 추천해주신 브란덴부르크 5번 1악장을 들으며

 

M5번의 이미지가 떠올라서 그 느낌대로 캔버스에 아크릴로 5번의 상상화를 그렸었다

 

(내 전시회 기념엽서 표지모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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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다시 뜯어본 5번. 당연한 얘기지만

 

굴드의 카덴차를 듣고 떠오른 5번의 이미지와는 영 딴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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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 모범생은 역시 흐트러짐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나마 특징을 찾아본다면 약간 치우친 계란 노른자와

 

성단 본체에서 조금 떨어진 사선의 스타체인 정도.

 

이슬은 박명이 되기 전부터 역대 최고 수준으로 내리고 있다.

 

점 몇 개 찍다 보면 성단이 없어진다.

 

천문인마을 옥상 콘센트에 드라이기를 꽂아서 아이피스 한 번 말리고 점 하나 찍고,

 

아이피스 다섯 번쯤 말리다 보면 그래도 안 보인다.

 

암막을 벗겨 보면 영락없이 사경에 뽀얗게 이슬이 내린다.

 

밤새도록 수백번을 드라이기를 돌린다.

 

야전이었으면 벌써 접었을 관측을, 인공호흡 해 가며 겨우 목숨을 부지해 본다.

 

아이피스, 사경, 파인더 대물렌즈와 접안렌즈..

 

그래도 구름 안 오는 게 어디인가. 이슬이야 내가 노력하면 되는 것이니깐 말야....

 

광속으로 M5 점을 다 찍을 무렵,

 

내가 노력으로 어찌 할 수 없는 거대한 산안개가 몰려온다

 

피부로도 촉촉한 습기가 느껴진다. 누군가가 온 몸에 미스트를 뿌리는 느낌.

 

안개가 걷히길 기다리며 친구와 전투식량을 까먹고 다시 옥상에 올라와서 노래를 듣는

 

아까 낮에 부산에 이현호님이 쓴 글의 말미에 있던 노래가사. 그 노래가 계속 듣고 싶

(출처 : 무지개의 별 이야기 - 내가 딮스카이를 찾아보는 이유 (별하늘지기) |

 작성자 현호l무지개)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소리에 묻혀

내 울음소리는 아직 노래가 아니오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 벽 좁은 틈에서

숨 막힐 듯 토하는 울음,

그러나 나 여기 살아있소

< 안치환, 귀뚜라미 >

 

 

새벽 2시경, 끝없이 밀려오던 산안개가 미풍을 타고 남쪽으로 사라지고,

 

하늘에는.. 저 뿌연 것은 은하수인가 안개인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니

 

정말 다시 은하수가 나타났구나!

 

언제 또 안개가 하늘을 덮을까 숨도 안 쉬고 미친듯이 점을 찍는다.

 

천문인마을 옥상에는 샤프로 점 찍는 소리와 쉴틈없이 돌아가는 드라이기 소리만이.

 

5번을 마무리하고 2번으로.

 

가끔은 숫자로만 얘기하는 별쟁이들의 대화가 입문자의 진입장벽이 되지 않나도 생각해 본다

 

하지만 번호를 보면 대상의 이미지가 자동으로 떠오르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빈틈없는 모범생 M5번에 비해 M2번은 학교 다닐 때 이름 깨나 날렸을 강렬함을 가지고 있다.

 

M2.jpg

 

사방으로 뻗은 강렬한 스타체인들.

 

천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에게 자문을 구한 결과,

 

구상성단은 특성상 스타체인이나 암흑대가 있을 수 없다고,

 

시선 방향으로 겹쳐 보이는 것이라는 명확한 답을 주었는데

 

2번의 스타체인은 우연히 그렇게 되기에는 너무나 우연의 일치가 많다.

 

구상성단에는 스타체인이라 부를 수 없는 다른 것들이 또 존재하나보다.

 

여튼, 무교수님의 'M2 꽃게설'을 듣고서 관측을 하니 선입견이 생겼는지

 

나도 삐쭉삐쭉 길게 솟은 별무리들이 꽃게 다리처럼 보인다.

 

꽃게.jpg

(출처 : 구글 검색)

 

가장 크게 뻗은 별무리들로 집게발까지 만들어 주는 깨알 같은 디테일까지..

 

역시 인문학 하시는 무교수님은 감성이 남다르다.

 

  

새벽 3시가 넘었다.

 

핵폭탄급 이슬은 밤새 변함 없지만 구름과 안개에 비하면 애교일 뿐.

 

이제 체력도 바닥나 가고 박명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가지고 온 흰 종이를 다 써서 구상성단을 더 이상 그릴 수가 없다

 

(나는 모든 대상을 검은 종이에 그리지만 구상성단만 흰 종이를 쓴다. 샤프를 써야 하기에..)

 

동쪽 하늘에 떠오르는 대상 중 자세 잡기 적당한 고도의 대상이 무얼까?

 

76번. 마지막으로 나비 한 번 그려보자

 

정한형님 스케치로는 이건 작은아령이 아니라 무조건 나비던데..

 

76_adhara.png

 

 

한참을 눈알 부릅뜨고 찾아봤지만, 내 저렴한 눈으로는 나비 날개를 온전히 찾을 수가 없다.

  M76.jpg

 

이건 만들다 만 나비넥타이 같다고 할까..

 

혹시라도 선입견이 나비 날개를 만들까봐 스케치 중에 자료 사진도 보지 않았다.

 

뭐 나는, 보이는 만큼은 모두 그린 거니까..

 

이 하늘과 망원경과 이 컨디션으로 더 이상의 욕심은 안 되겠지.

 

더 이상 다른 대상을 또 시작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할 수 있는 만큼 78번과 한 시야에 보이는 별들을 찍고 있으니,

 

아이피스에 보이는 별들이 점점 사라져 간다.

 

관측지에서 세팅을 마치고 여유있게 저녁 박명을 기다리던 것도,

 

또 관측을 마치고 별들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새벽 박명을 즐기는 것도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호사일 것.

 

밤새 거울과 렌즈들은 드라이기로 보살펴 주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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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애들은 이슬의 공습에 모두 속절없이 흠뻑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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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희형님이 협찬해주신 보면대는 간이용 스케치 테이블로 안성맞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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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나에 다녀온 진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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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기적의 밤을 보낸 김영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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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로 머리 감은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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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대와 천문인마을 옥상에 둘이 앉아서 맥주 한 잔 하면서

 

여명이 밝아 오는 것을 온 몸으로 느껴본다

 

(새벽 4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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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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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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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 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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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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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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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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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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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 세시간여에 걸친 요란한 소나기부터 아침 노을까지 극적인 순간들이,

 

길었던 하루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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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의 죠' 중에서 >

 

 

 

 

 

7일차 (8/1,금) - 천문인마을

 

 

옥상 방에서 눈을 뜨니 방문 밖에 눈부신 태양빛이 느껴진다

 

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벌떡 일어나서 눈꼽도 채 떼지 않고

 

태양 망원경부터 꺼낸다 (자기 것도 아니면서)

 

오늘은 아주 코딱지만한 홍염 하나가 겨우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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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네들이 일어서면 대박인데. 위성사진을 보니 태풍에 기인한 거대한 구름이 빽빽하게 몰려온다.

 

이따 비라도 뿌려야 기회가 있을텐데.. 왠지 오늘은 큰 기대가 되지 않는다.

 

아점 식단. 이 정도면 진수성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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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삽이는 그 상태 그대로 건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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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진산과학고등학교 선생님들이 망원경을 들고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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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천문반 학생들과 같이 오기로 했는데,

 

세월호 사건 이후 학생들을 데리고 다니기가 너무나 어렵다고 한다.

 

학생 한 명만 동반해도 '안전관리사'가 동행해야 한다는 정말로 그네다운 해결책.

 

 

요즘은 전투식량도 예쁜 포장으로 나온다. 그래도 전투식량은 국방색이 더 맛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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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니 하늘에선 환상적인 노을이 또 희망고문을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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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간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한 번은 기회가 있겠지..

 

월현리의 은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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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인마을의 마지막 밤이 되었다.

 

오늘은 저녁부터 가망없는 날.

 

옥상에서 친구와 남은 술들을 소진하다가 밤 10시쯤 구름 사이로 별들이 보인다.

 

아! 오늘은 그냥 앉아서 보자..

 

한 15분간 그 구멍이 사라질 때까지 명작 몇 개 감상하다가

 

그냥 멍하니 하늘 보다가 그렇게 흘려 보냈다.

 

하얗게 불태우는 것만 진리는 아니겠지..

 

잠깐의 하늘 감상 후.. 밤새 다시는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

 

슬램덩크 마지막회에서 북산이 산왕에 기적같은 승리를 거두고 나서

 

다시 거짓말같이 3연패를 당하고 탈락한 것처럼,

 

쉽게 기적이 일어난다면 그건 기적이 아닐 것이다.

 

 

 

 

8일차 (8/2,토) - 우리집

 

 

숙취로 무거운 머리를 컵라면으로 해독하고 몸도 망경도 정리하여

 

천문인마을 식구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출발.

 

강릉으로 향하는 엄청난 정체를 구경하며 텅빈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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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의 하늘은 맑음인데 예보는 태풍.. 헛된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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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하니 정말로 먹구름이 몰려왔다)

 

대신에, 시골 동네에서 일주일간 도 닦으며 가장 먹고 싶었던

 

햄버거와 팥빙수로 뱃속까지 힐링을 해 본다.

 

82_1.jpg

 

사랑하지만 의식적으로 잘 먹지 않는 햄버거를 한 입 먹으니

 

다시 도시인이 된 기분이다. 잊고 있던 회사일도 생각나고..

 

메시에 스케치 일주를 해 보겠다고 다른 것들을 전폐하고 메시에만 본 지도 5년이 되었다.

 

(처음 그려본 메시에는 벗고개 도로 개통 전에 2009년 여름에 본 17번이다)

 

어디 몇 개나 완성했는지 세어 볼까..

 

83.JPG

 

많이 한 것 같은데, 아직 110개 중 51개 밖에 되지 않는다

 

가장 진도가 늦은 부분은 궁수/전갈과 처녀은하단 등 많은 대상이 밀집된 구역.

 

그나마도 한 주 동안 전갈 위쪽 비인기 지역을 집중 탐구한 덕에 50개를 넘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휴가에 얼마나 성과가 있었는지 보자.. (직장 생활의 폐해. 모든 것을 실적으로 수치화한다)

 

낮에 땡볕에 잠복 근무를 하며 태양 순간포착 11장,
 

산청_홍염.jpg

 

천마_홍염.jpg

 

밤에도 잠복 근무를 하며 구상성단 6개와 행성상성운 1개를 구경하고

 

뱀주인 연작.jpg

 

M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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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틈히 스마트폰과 손가락으로 세 장.

 

별아띠의 노을 or 오로라.jpg

 

아이피스 월몰.jpg

 

혼자남은밤_curve.jpg

 

 

 

별이란 무엇일까. 사람이 별을 보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떤 이유일까.

 

일 년에 한 번 있는 휴가를 산 속에서 잠복근무 하며 보내도록 나를 움직인 것은 무엇일까.

 

별에 대한 강렬하고 맹목적인 열정과 집착,

 

그것이 나를 움직인 마르지 않는 에너지일 것이다.

 

 

출퇴근 시간에 틈틈이 관측기를 쓴 지 보름이 되었다.

 

얼마 전에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라는

 

하루키 책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대단치도 않은 일을 담담하게, ㅋㅋ이나 ^^;; 이런거 하나도 없이

 

어찌 그리 재미있게 글을 쓸 수 있는지.

 

나도 한 번 따라해 보기로 했다.

 

글에 ㅋ이 없으니 너무나 허전하다 15년이 넘은 오랜 글짓기 습관인데..

 

그래도 긴 글을 ㅎ 하나 없이 완성했다는 데에 나름 의미를 부여해본다.

 

 

유난히 많은 구름과 이슬과 함께 했던 일주일 간의 여행.

 

유한한 인간의 에너지를, 그 에너지를 가치있게 쓴 것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P.S. 3년 연속으로 별로 가득찬 혼자만의 휴가를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해 준

     속 깊은 울 마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Nightwid 無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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