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경이 도착했다
주문한지 1년 3개월만에 말이다
(10년은 기본으로 기다린다는 AP에 비하면 광속에 가깝지만..)
EQ에 올릴 예정이라 작은 초점비가 필요했다
내 키를 더 키울 수는 없으므로 관측의 효율을 위해 초점거리가 짧아야 하는데,
18인치를 EQ에 올려서 발판 없이 관측을 하려면 F/3.5가 필요하다
잠부토, 로이스, 웨이트.. 인간적으로 너무 비싸다
F4 이하는 추가비용도 부담해야 한다
'귀찮게 왜 이런걸 주문해.. 나 만들기 싫어' 라는 느낌의 견적서다
거기에다 F/3.5를 쓰려면 파라코어를 또 사야 하고
망경이 커져서 EQ도 대형으로 바꿔야 한다
포기!
가격도 저렴하고 사경도 끼워주고 성능에 대한 평판도 나쁘지 않은 16인치 UK 오리온 미러로 정했다
스트럭쳐는 당근 남스돕이지..
근데 듣던 악명 그대로,
오리온은 납기 약속을 계속 미룬다
무슨 믿는 구석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더 넣은지 10개월이 지나서도 미러 구경을 못하고 출국을 하게 되었다
내가 떠나고 나서도 한달이 더 걸려서 미러가 야탑김씨 장인의 작업실에 도착했다
다시 스트럭쳐 제작 시작..
(참고 : http://www.nightflight.or.kr/xe/190741)
지난 월요일, 남희형님의 손을 거쳐 생명을 얻은 망경은 태평양과 뉴질랜드 세관을 넘어서
한국에서 출발한지 두 달만에 오클랜드 모처에 도착..
무언가 엄청 중요한 물건이 들어있을 것만 같은 hand made 나무상자.
고대 유물을 뜯어보는 기분으로 하나씩 오픈.
어 이건.. 완충제..가 아니라 한국의 맛!!!
나름 명품 미러라고 시험 성적서도 들어있다
Strehl Ratio 0.989
용어는 줏어들은 적 있어도 뭐가 얼마나 좋은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남희 형님의 지령을 받아서 하나씩..
완성!
자연스럽게 설정샷! 근데 생각해보니 실내네 ;;
설상가상으로 망경을 들였는데도 날씨가 좋다
앞마당에 망경을 펼쳤다
아름답다. 완벽한 균형과 마감.
여기서도 설정샷 한번..
보석상자, 에타 카리나, 오메가 센타우리, 그리고 달..
내일 업무 부담에 오래 보지는 못하고
미러 제대로 앉혔는지, 초점은 잘 나오는지 그냥 확인만 한 것인데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얼마나 완벽한 망원경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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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또 날씨가 좋다
오늘은 스케치 한 장 해 보자.
평일의 압박에 어디 갈 수는 없고
집 마당에서..
오랫동안 꿈(만) 꾸던 "Backyard Astronomer"를
예상보다 빠르게 실현하게 되었다
막연하게 은퇴하고 시골에 집 짓고 살아야 가능할 줄 알았는데..
오클랜드에는 모든 집에 정원이 있고 (한국식 Apartment도 있긴 있다)
뉴질랜드 최대의 도시라 여기도 광해가 있긴 하지만
그 수준은 경기도 외곽지역 수준이라..
그리고 미세먼지도 없어서, 날씨만 좋으면
마당에 비치의자를 펴 놓고 누워서 5등성까지 육안으로 볼 수 있다
어쨋든, 드디어 그 날이 왔다.
새로운 망원경의 First light,
Backyard Astronomer로서의 First light,
그리고 뉴질랜드에서의 First light이다. (남의 망경 얻어본 것은 제외)
아, 망경 이름은 Stelly로 정했다
딸래미 이름이 별을 뜻하는 Stella이니, Stella의 애칭인 Stelly로..
두 딸들 (Stella & Stelly)
Eta Carina 별은 너무나 특별한 별이다
1843년 폭발 이후
현재까지도 계속 무언가를 분출하고 있는..
(출처 : NASA)
그리고 그 비현실적인 장관이
허블사진 뿐이 아니라
우리들 망원경으로도, 가시광선 영역에서도 볼 수 있다
나는 2010년 1차 호주 원정에서 인상깊게 관측하고 스케치를 남겼는데,
[ Eta Carina & Key Hole nebula, 호주 Coonabarabran에서 조강욱 (2010) ]
2012년에는 더 좋은 조건에서 관측했음에도 그 분출, "Giant Eruption"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어 뭐지? 이미 분출 끝났나?
4년만에 다시 만난 Carina자리 Eta별은
여전히 열심히 내용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배율을 올려보자
Ethos 13(123x) -> Ethos 8(200x) -> XW 3.5(457)..
3.5는 초점이 잘 잡히지 않는다. 넘 무리인가
혹시나 하여 Ethos 8 + 파워메이트 2.5 조합으로 500배를 만들었는데
XW 3.5보다 상이 훨씬 좋다
역시 아이피스는 연두색이 진리..
(TeleVue 제품은 마킹이 모두 연두색으로 되어 있다)
부담없이 맥주 한 캔과 함께 몇십분을 집중하여 관측..
오렌지색 별 하나와 그 성운기와 주변의 별들을 완성했다
[ First Light - Giant Eruption, Auckland에서 조강욱 (2017) ]
시골에 가면 더 잘 보일까?
성운이니 물론 그렇겠지.
(에타 카리나 클로즈업)
망경을 정원에 그냥 두고 자러 가야 진정한 Backyard 관측이 될텐데
요즘 여기도 좀도둑이 기승이라
소심해져서 망원경을 접어서 방에 옮겨 놓았다
Backyard에 Garage 하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다고,
이 호사를 누리면서도 더 편하고 싶은 것은 사람의 본능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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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밤, 또 맑다. (오클랜드의 청정일수는 한국보다 그리 많지 않다)
오늘은 좀 쉬어야 되는데..
잠자리에 들려 하다가 혹시나 하고 Sky Safari를 돌려보니
목성에서 이오의 영+경을 세트 메뉴로 맛볼 수 있다
안 보면 천벌 받을 것 같아서
자정 무렵, 영 시작 직전에 급히 망원경을 다시 날랐다
맑은 하늘에 비해 시상은 좋지 못해서
감탄사를 날릴만한 목성은 되지 못했지만
거실 데크에 망경을 펼쳐놓고서
음악을 작게 틀어놓고 맥주 한잔과 함께 하는 목성쇼는
세상의 근심을 잊게 한다
‘탑골 공원~ 담장 기와도~ 흠씬 젖고..’ 간만에 들어보는 한국 노래도 좋다
몸이 아무리 바빠도, 마음이 아무리 급해도
주객이 전도되면 안되겠지
별을 봐야 나의 존재의 의미를 찾을수 있는 것이니....
Nightwid 無雲